41년만에 5·18 무명열사 신원 찾았다…행불자 신동남씨

41년만에 5·18 무명열사 신원 찾았다…행불자 신동남씨

5·18조사위, 국립5·18묘지서 기자간담회 개최
무명열사 1명의 신원 확인
국립5·18민주묘지 내 묘 4-90 안장 무명열사, 신동남씨로 확인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인근서 3공수 발포로 총상 추정
기록 조사·유전자 검사 거쳐 신원 확인

41년 만에 형을 찾은 신동남씨의 동생 신모씨가 무명열사의 묘를 둘러보고 있다. 김한영 기자

 

41년 만에 이름 없이 국립5·18민주묘지에 묻혀있던 무명열사 1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회(이하 5·18조사위)는 15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세미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5·18 당시 행방불명자로 신고된 신동남씨의 신원이 5·18민주묘지에 안장돼 있는 무명열사 묘지번호 4-90번 사망자와 동일인임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1950년 6월 30일생인 신씨는 지난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인근 여인숙에서 나와 복부에 총상을 입고 광주적십자병원에 입원해 수술까지 받았으나 끝내 숨졌다.

1980년 5월 20일 당시 3공수는 당시 광주역 앞에서 발포를 해 4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5·18조사위는 광주역 인근 여인숙에서 지내던 신씨가 3공수의 발포에 의해 총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민수습대책위원회가 신씨의 시신을 다른 사망자들과 함께 당시 전남도청 상무관으로 옮겼다. 당시 5·18에 참여했다 구속된 이금영씨의 어머니가 신씨를 자기 아들로 착각해 장례 절차를 진행했고 신 씨는 1980년 5월 말 광주 망월시립공동묘지에 안장됐다.

그러나 장례식을 치른 지 얼마 안 돼 금영씨의 생존 사실이 확인되면서 신씨의 시신은 이름을 모르는 무명열사가 됐다.

신 씨의 유족은 신 씨가 행방불명됐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광주시에 신청했지만, 증거 부족을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지난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실시된 광주시의 '행방불명자 소재 찾기 사업'을 통해 신원 미상의 11명과 행방불명자 가족 등의 DNA를 대조했지만, 신 씨의 시신과 유전자가 일치하는 가족은 확인되지 않았다.

15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18진상규명조사위 송선태 위원장이 41년 만에 무명열사에서 신원이 밝혀진 신동남씨의 동생 신모씨에게 유전자 검사 결과서와 진상규명조사 결과서를 전달하고 있다. 김한영 기자

 

5·18조사위는 지난해 11월 19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아직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3기의 무명 열사 분묘에서 DNA 시료 채취작업을 진행했다.

5·18조사위는 신원 미상 사망자들의 검시 보고서와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 소재했던 병원들의 진료기록 등을 전수조사해 유사성을 자진 가진 대상을 특정했다. 이후 행방불명자의 기록과 행방불명 피해 신청 기록 등을 대조해 4-90번 묘지의 시신이 신 씨와 일치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후 5·18조사위가 이복 동생인 신 모씨에게 채혈한 혈액의 유전자를 분석해 신씨 유전자와 대조한 결과 23개의 유전자좌(염색체에서 특정 유전자가 차지하는 위치) 가운데 21개의 유전자좌가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로 부계에 의한 친족관계 여부를 확인하는 Y-STR(Short Tandem Repeat) 기법과 단일염기다형성(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ysm) 기술을 병행한 결과 99.99996% 가족 관계임이 확인됐다.

이날 41년 만에 형을 찾은 동생 신씨는 "행방불명자로 신청했으나 심사위원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이후 가족들은 포기하고 살았다"며 "진상조사위가 형의 신원을 확인해준 데 감사하고 앞으로 형을 잘 모시겠다"고 울먹였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회 송선태 위원장은 "신씨를 찾았음에도 여전히 신원이 확인되지 못 한 유해가 4구 남았다"며 "현재 계엄군이 진상조사위에 직접 암매장 또는 매장 목격담을 진술하고 있어 행방불명자 찾기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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