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과 2016년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남북 민간 교류의 시계를 멈춰 세웠다. 인도적 대북 지원의 통로가 물리적으로 차단된 지정학적 한계 속에서, 북한 주민을 직접 마주했던 의료인들의 연대는 방향을 선회하여 우리 사회 내부의 틈새, 즉 탈북민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지난 5일 전남 화순군 동면 서성동산에서 열린 '제10회 탈북민들의 찬양 음악회'는 단절된 남북 관계 속에서 종교와 의료적 돌봄이 어떻게 사회적 통합의 기제로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현장이었다.
멈춰 선 대북 의료지원, 남한 내 탈북민 돌봄으로 진화이날 행사를 주최한 통일부 소관 사단법인 '선한의료인들'의 역사는 남북 관계의 부침과 궤를 같이한다. 2007년 금강산 온정인민병원에서 북측 의료진과 합동 진료를 시작한 이들은 2016년까지 개성공단 남북 협력병원에서 북한 근로자들을 치료했다. 하지만 대북 진료 길이 막히자, 이들은 남한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탈북민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찬양 음악회는 그 연대의 결실이다. 광주 포도원교회를 비롯해 광주, 나주, 여수 지역 탈북민들이 모였고, 특히 제주 임마누엘순복음교회 소속 탈북민들은 연휴 기간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하자 배를 타고 상경해 무대에 오르는 열정을 보였다.
탈북민들의 찬양음악회에 출현한 몇몇팀들이 준비한 곡을 선보이고 있다. 한세민 기자단순한 종교 행사를 넘어, 이 음악회를 준비하고 교제하는 과정 자체가 고립되기 쉬운 탈북민들에게 중요한 '사회적 안전망'으로 작동하고 있다.
트라우마와 부채감…의료와 신앙의 교차점에서 찾는 치유이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단순히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어려움을 넘어선다. 목숨을 건 탈출 과정에서 겪은 구조적 트라우마와 북한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깊은 부채감이 이들의 내면을 억누르고 있다. 선한의료인들은 전문적인 의료 지식을 바탕으로 이들의 육체적 질병을 치료하는 동시에, 신앙을 통한 심리적 치유를 병행하고 있다.
조동윤 사무총장(새순교회 장로)은 현장에서 마주한 탈북민들의 현실을 이렇게 진단한다.
선한의료인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처음에는 우리 탈북민들이 마음을 잘 열지 않았습니다. 탈북 과정의 트라우마나 북에 남겨둔 가족들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저희 단체 소속 전문의들이 육체적인 질병 진료를 안내할 뿐만 아니라, 신앙 안에서 마음의 위로를 전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입니다. 향후 통일이 되면 북한 고향 땅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그분들의 비전이, 훗날 한반도 복음화와 사회 통합의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사회적 약자를 향한 교회의 책임이날 예배의 메시지 역시 거대 담론에 밀려 소외된 이들을 향한 교회의 구체적인 책임을 강조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제목으로 설교에 나선 박배식 목사(광주 청소년1388 대표)의 메시지는 그의 개인적 삶의 궤적과 맞물려 깊은 설득력을 지녔다.
박배식 목사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있다. 한세민 기자뇌염으로 중증 장애를 갖게 된 아들을 키우며 비행 청소년과 장애우 가족 등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이들을 돌봐온 박 목사의 목회 여정은, 신앙적 가치가 이념과 체제의 벽을 넘어 어떻게 구체적인 '생존과 위로의 떡'으로 나뉘어야 하는지를 방증한다.
남북의 정치적 교착 상태는 당분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 간의 거대 담론이 멈춘 자리에서도, 종교와 시민 사회의 공적 역할은 소외된 이들의 손을 잡고 이념의 상처를 꿰매고 있다. 탈북민들의 찬양 소리가 울려 퍼진 화순의 작은 동산은, 다가올 통일 시대에 우리 사회가 미리 겪어내야 할 치유와 통합의 축소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