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합동 제110회 총회, 호남지역 생명존중포럼이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란 주제로 열렸다. 한세민 기자오랜 세월 한국 보수 개신교계에서 '자살'은 금기어였다.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철저한 교리적 원칙 아래,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회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로 규정되어 왔다. 이러한 신학적 엄숙주의는 유가족들을 향한 목회적 돌봄마저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작용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 생명존중위원회가 주최한 '호남지역 생명존중포럼'은 이 견고하고 오래된 교리적 딜레마가 수면 위로 드러난 상징적인 현장이었다.
보수 신학과 목회적 현실의 충돌포럼의 핵심은 전 총신대 신학대학원 이상원 교수가 발제한 '자살에 대한 교단 신학적 입장 제언'이었다. 이 교수는 '자살의 정의'와 '성경과 교회사가 말하는 자살', '자살과 구원의 문제', '자살한 신자의 장례'에 대해 나눴다.
이 교수는 "구원의 조건으론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신앙고백 외에 다른 조건이 없다"며 "신자가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말은 신플라톤주의에서 유입된 미신적 통설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자살한 사람은 신앙고백을 했어도 지옥에 간다고 강하게 말하는 방식이 일정한 교육적 효과를 가질 수는 있으나 교육적 효과를 위해 구원의 진리를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신앙고백이 분명한 신자의 자살이 그의 구원을 취소하지 못한다면 자살한 신자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죽음의 경우와 동일하게 장례예식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자살한 신자의 장례는 정죄보다 위로와 동행의 책임을 앞세워야 한다"며 "유족들이 깊은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은, 현재 예장합동 교단이 타 교단이나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등의 행보에 비해 여전히 짙은 보수성을 띠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현장에 참석한 상당수의 목회자들은 여전히 '자살은 곧 지옥'이라는 전통적인 도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교리의 순수성을 수호하려는 신학적 경직성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한국 사회의 비극적 데이터와 남겨진 유가족들의 고통이라는 목회적 현실 사이에서 강하게 충돌한 것이다.
단죄에서 '돌봄과 연대'로 나아가는 첫걸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포럼이 갖는 사회적·종교적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교단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그룹으로 분류되는 예장합동 총회가 '자살'이라는 주제를 공식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생명존중위원장 하종성 목사(내리장로교회)는 "생명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한 사회 운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신앙의 실천"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자살을 개인의 윤리적 일탈로만 치부하던 과거의 시각에서 벗어나, 교회가 위기에 처한 이웃을 품고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공공신학'적 접근으로의 선회를 의미한다.
비록 단번에 신학적 합의를 이루거나 유연한 목회적 돌봄으로 나아가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정죄와 침묵으로 일관하던 교단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금기를 깬 보수 교단의 이 무거운 첫걸음은, 남겨진 유가족들의 슬픔을 온전히 애도할 수 있는 생명 존중 문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호남의 교회들이 그 험난하지만 의미 있는 논의의 출발선에 섰다.